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문단 편집) === 북유럽 === 서유럽과 동유럽에 비하면 반감이 덜하겠지만 여기서도 평가가 영 좋지 않다. 나치가 이쪽 민족들을 롤모델로 찬양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대단히 착각한 것이다. 2차대전 당시 철광석을 팔아 뒷거래했다는 것이 기정사실인 [[스웨덴]]조차 유대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숨겨주고 나치에게 넘기려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라울 발렌베리의 덕이 컸다. [[라울 발렌베리]] 문서로.] 물론 SSS, 뉘스벤스카 협회처럼 적극적으로 친나치 성향을 가진 단체들도 활개치긴 했으나 생각보다 영향력은 크지 않았으며 당연히 2차대전 이후에는 모두 금지되었다. 그리고 [[겨울전쟁]], [[계속전쟁]] 과정에서 나치의 지원을 받은 [[핀란드]]같은 사례도 실상은 소련이 더 미우니까 이이제이적인 접근으로 다가간 것이었고 나중에 [[라플란드 전쟁]]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래서 종전 이후에도 대놓고 패전국 일원으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이와 별개로 종전 이후에는 소련에 상당한 배상금을 갚고 소련의 눈치를 좀 보아야 했다.] 덴마크[* 나치가 쳐들어오자 체급 자체에서부터 도저히 맞설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별 저항 없이 항복해 국가체제 자체는 유지될 수 있었으나 애당초 좋아서 항복한게 아니었기에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10세]]는 끝까지 나치에 비협조적이었다. 히틀러가 보낸 생일을 축하하는 매우 긴 전문조차 짤막하게 '매우 고맙소' 라는 답변만 했을 정도였으며 나치 독일군으로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까지 행했다. 물론 덴마크 사람들도 나치에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덴마크 영화 [[랜드 오브 마인]]에서도 덴마크인들이 독일 패잔병들을 유태인 죽인 손으로 신성한 덴마크 국기를 만졌다는 이유로 구타하는 등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존재로 보는 묘사가 나온다.], 아이슬란드[* 나치가 덴마크 국왕의 반응에 빡쳐서 독립시켜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와 별개로 나치 자체에 대해선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당시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본국의 사이가 딱히 나쁘지도 않았거니와 독립시킨 것과 이들의 만행은 별개이니.], 노르웨이에서도 다른 유럽 국가들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이 대세인 편이다. 특히 노르웨이에서는 아예 대놓고 나치에게 '''철저히 농락, 유린당한 기억이 있어''' 현재까지도 치를 떤다. [[레벤스보른|여자들의 경우 독일인과 노르웨이인의 혼혈을 낳을 것을 강요당했고]] 남자들 역시 반 강제로 독일군이나 친위대에 징집되어 종전 후에는 위의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식의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이 '강요당한 부역질'에 관해서는 [[노르웨이/역사]] 문서로.] 괜히 [[노르웨이 연쇄 테러|안데르스 브레이빅]]이나 [[버줌]]처럼 대놓고 네오나치, 극우 성향을 보이는 범죄자들에 대해 법정 최고형[* 징역 21년+5년 예방구금으로 수감자가 갱생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사실상 무기징역이나 마찬가지이다.]을 선고했던 게 아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로는 모두 대세가 그 유명한 사회민주주의 성향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일부 철없는 네오나치들이나 흑화한 신이교주의자들이 아닌 이상 자기들 칭찬해 줬다고 '''태연하게 전체주의, 군국주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한 나치를 대놓고 찬양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봐도 좋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